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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택근 : 아나운서계의 큰별이 지다. 아들 임재범 빈소를 지키다.

by ocing 2020. 1. 12.

아나운서계의 전설 임택근씨가 지난 1월 11일 향년 89세로 별세했다. 유족 측은 오늘 (12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전날 오후 8시께 돌아가셨다"며 "작년 10월 심장 문제로 중환자실에 입원했고, 11월에는 뇌경색 진단을 받았다. 그 당시는 바로 시술을 해서 괜찮았지만 지난달에 다시 폐렴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라고 전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유족 측은 이어 "마지막까지 의식이 있었고, 가족이 직접 간병해서 편안하게 가셨다. 그러나 유언을 남길만한 상황은 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빈소는 강남 서울성모병원이고  발인은 오는 14일 오전 8시 예정이며, 장지는 용인 천주교회다. 상주는 아들인 가수 임재범이다. 임재범의 이복동생인 배우 손지창, 그리고 손지창 부인인 배우 오연수도 함께 빈소를 지킬 것으로 에상하고 있다.

고인이 된 임택근씨는 라디오조차 귀했던 방송 격동기에 목소리 하나로 대중들과 기쁨 그리고 슬픔을 함께한 1세대 아나운서였다. 그 당시에는 임택근씨는 연예인이 부럽지 않은 라디오와 흑백TV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고인은 서울 종로 출생으로 연희대학교(지금의 연세대학교) 1학년생이던 1951년에 중앙방송국 아나운서로 입사했는데 임택근씨는 당대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유명세를 탔고 이후 올림픽 중계 방송으로 통해 세상사람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이후 1964년에 MBC로 이직해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중 1969년에는 아침 프로그램인 '임택근 모닝쇼'를 진행했다.  이 방송 프로그램이 우리나라에서는 TV 프로그램 명칭에 MC 이름이 들어간 첫 사례였다.

사진출처 : 중앙일보 / 1969년 11월 17일 첫 전파를 탔던 '임택근 모닝쇼'의 한 장면. [중앙포토]


그는 높은 인지도를 배경으로 1971년에는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낙선을 했고, 다시 MBC로 복귀해서 사장 직무대행까지 지냈다.

그 이후 퇴사 후에는 개인 사업을 했으며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와 대한고용보험 상무를 지냈다. 그는 1990년에는 KBS '노래는 사랑을 싣고'로 20년 만에 진행자 석에 서기도 했으나 주로 기업인으로 활동했다. 임택근씨는 안타깝게 2008년에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서 오랜 기간 휠체어 신세를 지기도 했다.

사진출처 : 중앙일보 /  아나운서 임택근(오른쪽)이 1966년 권투선수 김기수와 이탈리아 출신 벤베누티 간의 세계선수권 타이틀매치를 중계하는 모습. [중앙포토]


한국 방송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스타 아나운서 임택근씨는 비교적 복잡한 가족사로도 종종 언급되어 왔다.
그의 아들인 가수 임재범은 2011년 KBS 2TV 토크쇼 '승승장구'에서 아버지 임택근과 이복동생인 탤런트 손지창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공개하기도 했지만 그 당시 임재범은 아버지와 왕래를 하지 않고 있는데 "이제는 찾아뵐 때가 된 것 같다"고 하기도 했다.

임택근씨는 임재범을 두 번째 부인 사이에서, 손지창은 세 번째 부인 사이에서 얻은 혼외자식들이다. 삼부자(父子)는 인연이 끊어진 채 살다가 가족사가 공개된 후 잠시 교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또 고인 임택근씨는 전 주한 미국 대사인 "성 김"(한국명 김성용)의 외삼촌이기도 한데 "성 김"의 아버지이자 전 중앙정보부 요원인 김기완은 임택근씨의 자형이 된다. 임택근씨의 동생 임양근도 1967년 동양방송 아나운서 4기로 1970년대 형과 같이 아나운서로 활동한 적이 있다.

<임택근 아나운서 방송에 심은 나의 꿈 나의 보람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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